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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 연계
작성자 : 홍보문화부 작성일 : 2013-08-22 조회수 : 4,401

웹툰으로 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21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 연계 이미지 하단에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 일제의 패망을 예견한 임시정부는 끊임없이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과의 연합을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옌안의 화북조선독립동맥(이하 독립동맹)입니다.

    화북조선 독립동맹
  • 조선독립동맹은 화북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와 중국공산당 지역인 옌안에서 활동하던 세력이 결합하여 조직한 단체입니다.

    "화북조선독립동명 위원장 김두봉입니다. 조선독립을 쟁취하자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와 함께 싸웁시다."
    • "난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함께 해도 될까요?" "누구라도 괜찮으니 힘을 모읍시다."
    • "난 일본을 위해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전의 과오를 청산하고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할 각오만 되어 있다면 괜찮아요."
  • 어쨋든 임시정부는 독립연맹과 그 무장조직인 조선의용군과의 연계를 추진하였고

    "일단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의 통일을 도모하고" "양측의 무장세력인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을 한 곳에 집결시켜 활동하면 되지 않을까요?"
  • 양측 지도자들은 편지를 통해, 압록강에서 두 단체의 군대를 합류시키자는 의견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하단에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 임시정부는 또한 연해주 한인부대와도 연계를 시도했습니다. 한인부대는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 지역으로 건너한 항일유격대를 말합니다.

  • 이들은 산악지대에 숨어있다 불시에 일본 관공서를 습격하거나 일본경찰을 사살하기도 하는 등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며 활발한 항일투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두두두 끄아악!
  • 1940년 이들이 러시아로 이동한 후, 임시정부에서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다가...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충모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에 있는 우리 한인부대에 대한 소식을 알리고 싶었소."
  • 임시정부는 소련의 한인들과 연계하기 위해 연락원을 파견했습니다.

    "연해주 한인부대를 찾아 임시정부의 입장을 전해주시오. 반드시 힘을 모으자고 말이오." "꼭 임무를 완수하고 오겠습니다."
  • 임시정부의 연락원이 베이징에 다다랐을 때

    "만세~ 만세" "일본이 항복했다! 전쟁이 끝났다." "엥? 그럼 난 더 이상 갈 필요가 없는 거네?"

    일제의 항복 소식으로 이들 사이의 연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뜻 깊은 시도였음이 분명합니다.

이미지 하단에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 미주 한인사회와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지요. 임시정부가 그 조직을 유지 운영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미주 교포들의 재정적 후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조직한대요!" "힘이 있으면 힘을, 돈이 있으면 돈을 내라! 좋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지." "청소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이지만 임시정부를 위해 쓰겠어요!"
  • 미주지역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 결성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오랫동안 임시정부의 산하기관이나 다름없이 대미 외교를 전담했습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힘내라 힘! 대한독립만세!"
  • 일찍부터 국내와의 연계를 위해 연통제, 교통국 등을 설치했던 임시정부는 다시 한 번 국내 독립운동세력과 힘을 합하기 위해 1944년, 국내공작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연합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국내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과" "이를 실행에 옮길 한국 청년들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운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임시정부에서 두 사람을 국내 비밀공작원으로 파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한편, 국내 독립운동 세력도 충칭의 임시정부와 옌안에 있는 독립동맹과의 연계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건국동맹 대표 여운형입니다. 우리 건국동맹에는 농민, 노동자, 청년, 학생, 교사, 회사원 등 다양한 계급계층과,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이들이 참여해 철저히 비밀결사로 움직이고 있지요."
    • 농민
    • 노동자
    • 청년
    • 학생
  • 건국동맹은 1945년 5월 말, 임시정부와의 접촉을 위해 연락원을 파견했습니다.

    상호 연락 및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 또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지만,

  • 이처럼 임시정부가 시도했던 국내외 독립세력과의 연계 추진은 광복 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 되었답니다.

독립기념관 가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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