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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감상문 공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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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제와 오늘, 한국의 어제와 오늘, 나와 한국의 내일
작성자 : IEM 국제학교 1학년 한0호 수상 : 금상(고등부)

내 방 피아노 위 겨레의 탑 축소 모형, 저는 6학년 수학여행 때 독립기념관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독립기념관 기념품 판매점에 달려가 겨레의 탑 축소모형을 사고 독립기념관은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후 세워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4년 후, 제가 고1이 되어 이번에는 소풍으로 독립기념관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6학년 때 제대로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엄청나게 큰 탑이 있고, 태극기도 많고, 엄청나게 크다.’ 라고 정확한 내용보다는 그냥 제 기억에 남는 독립기념관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독립기념관에 가서 겨레의 탑을 보게 되었는데, 겨레의 탑은 여전히 크고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레의 탑을 보고 난 후 본격적으로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점은 제가 최근에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무한도전에서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을 주제로 삼아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 한 곳이 일본의 우토로 마을이라는 곳인데, 그곳이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을 징용하여 전쟁준비를 위해 활주로를 닦았었는데, 그곳에 아직 살고 계신 분들에게 한국 음식을 배달해 주었습니다. 이런 방송과 같이, 최근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의 독립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데, 독립기념관에서 강제노역에 관한 내용으로 전시된 곳이 있었는데, 그 중 일제강점기 시절 17살이었던 박재덕 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17살 때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이란 곳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마치 노예같이 혹사를 당하셨다고 하는데, 제 마음속에 그저 동정에 그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의미 없이 ‘김구는 한일 애국단,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와 같이 그저 시험을 위해 외우던 독립운동가분들만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 그때, 그 시절을 삶으로써 그 삶 자체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계시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윤봉길 의사님의 사형 틀을 보게 되었는데, 그 전에 제가 독립기념관에 가기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 시간에 SNS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우연한 일치같이, 그곳에서 '윤봉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에서 윤봉길 의사님은 무릎을 꿇고 양팔이 십자가 모양의 나무 형틀에 묶여 눈은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진을 보면서 사실 어떤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실제로 제가 독립기념관에 가서 소름 끼치게 그 윤봉길 의사님의 사형 틀을 보게 되니 정말 놀라웠고, 윤봉길 의사님의 죽음 앞에 형식적이고 그저 SNS의 많은 게시물 중 하나로 여겼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저는 나름의 역사의식이 있고, 나라를 사랑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까놓고 보니깐 너무 무지함이 느껴졌습니다. 나의 그동안의 역사의식, 그리고 지금 나의 역사의식의 현주소는 대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설레어 하며, 목숨을 다 바쳐서, 또는 그냥 삶 자체가 독립이었던 그 사람들의 그 피 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역사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어제와 오늘이 나,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나는 그저 앞만 오직 앞을 향해서만 달려갔지만, 지금부터의 나, 내일의 나는 땅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 넘어지지 않고, 계속 달려올 수 있게 돌부리를 없애고, 또 걸려 넘어질 만한 것들을, 내 발목을 잡을 만한 것들을 없앤 땅을 만들어 주신 그분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더는 무임승차로 남는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함께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한 학생이 되고 싶습니다.. 나라와, 역사와 함께하는 그 걸음들의 소중함을 앞으로 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제 피아노 위에 올려진 그 겨레의 탑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더욱 뜨거워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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