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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살려준 봄동
작성자 : IEM 국제학교 2학년 정0나 수상 : 금상(고등부)

초봄, 잃은 입맛을 살려주는 먹거리, 봄동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왜 봄동은 다른 배추와 달리 옆으로 퍼져 있을까?’ 생기를 찾아보기 힘든 추운 겨울을 살아남아야만 했던 봄동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생존에만 집중해야 했기에 새 생명을 틔우는 봄에 힘이 다 빠져 옆으로 퍼져있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추운 겨울을 온 힘을 다해 이겨낸 봄동처럼, 추운 고난의 길을 묵묵히 이겨냈던 선열들의 그날 그 시절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독립기념관에서 첫걸음을 내딛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우리나라가 싫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이 너무나도 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약하기에, 간도를 지킬 수 없었고, 우리나라의 김치, 독도, 한글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란 생각은 제가 언제나 우리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은 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 반전되었습니다. 나라의 뿌리를, 일본과 시련의 시작을,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들을, 큰소리로 독립을 외쳤던 운동들을, 몸으로 부딪쳐 외친 투쟁들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노력들을 알아가는 그 과정 안에서 제가 사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빛나는 나라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랑스러운 저의 조국 대한민국을 오뚝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절대 짧다고 말 할 수 없는 반만년의 역사를 살아오신 선조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에 으뜸을 고르자면 ‘굳게 일어서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대한민국은 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려 때는 몽골의 지배를 , 조선 때는 명나라와 청나라의 지배를, 대한제국 때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약자였습니다. 이는 저도 잘 알던 사실들로, 제가 대한민국을 싫어하였던 이유였습니다. ‘약한 나라 대한민국’ 그러나 그 면모 뒤에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강한 모습을 독립기념관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제가 그동안 대한민국 역사 속 약자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약자이기에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주변나라에 의했을 때도 있었고, 서로의 불화 합에 의했을 때도 있었고, 사회 경제의 문제 때문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는 넘어져도 굳게 다시 일어나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독립기념관 안내전단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5천 년 역사 속에서 무수한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독립의 의지와 자주 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물려주신 선열들의 빛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독립기념관에서 그 빛나는 역사를 배웠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무섭고 두렵지는 않았을까? 강압적으로 억압하는 일본의 모습,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처벌을 내리는 모습,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몸의 아픔을 가장 두려워하는 나였다면, 일본이 너무나도 무서워 독립운동을 생각해 보기는커녕 일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려 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무서움을 직접 접촉해 본 적이 없는 나도 쉽사리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그 독립운동을 후대를 위해서, 자유를 위해서 기꺼이 선택하신 독립운동가들. 그분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두 발로 땅을 디디며, 두 어깨로 책임감을 짊어지고 일어섰습니다. 이봉창, 나석주, 유관순, 안중근, 손병희, 길선주 등 너무나도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들을 맑은 고딕 1 Pt 크기의 글씨로 적는다면 A4용지를 양면으로 가득 채우고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그분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내놓은 모습을 좀 더 직접 살펴보자 자아 만족과 사리 만족에 찌든 저에게 그 희생이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몰려왔습니다. ‘희망 없다 느껴진 그 땅에 독립의 싹을 틔우다니.’ 독립운동가분들이 마치 봄동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봄에 굳게 서 있을 힘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든 힘을 소진한 봄동처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살아남을 비상책 하나 마련하지 않고 전진했던 그분들. 비록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었을지라도, 빛나는 그들의 죽음 덕에 독립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죽었던 저의 역사의식이 독립기념관을 통해 살아난 것처럼, 많은 사람의 역사의식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잃은 입맛을 살려준 봄동처럼, 잃은 역사의식을 독립기념관에서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젠 제가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아 소중히 지켜왔던 우리나라 민족의 역사를 잘 보존하여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젠 제가 역사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굳게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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