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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
작성자 : 서울송화초등학교 5학년 민0홍 수상 : 금상(초등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많은 독립군에 대한 자료와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인 자료들과 전시품들이 많았다. 그 곳에 갔을 때 엄청나게 많은 단풍과 은행잎을 보고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 대해 알려주는 곳인데 이렇게 멋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풍에 대한 건 잊고 독립군 체험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무기와 침대, 부엌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옛날에는 이런 곳에서 생활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의 처지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당에 들어가서 '도토리 훈장'이라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영상에서 우리나라 독립군이 얼마나 독립을 하고 싶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만약에 타임머신을 타고 독립군이 싸우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독립군들께 우리나라가 독립되었다고 전해하고 싶다.

동영상을 보고 나서 청산리 전투(대첩)와 봉오동 전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먼저, 청산리 전투는 청산리 대첩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중국 땅에 있는 청산리에서 크게 승리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전시관은 5 전시관, 제목이 '나라 되찾기'인 전시관에 갔다. 그곳에서 청산리 전투(대첩)의 모형, 윤봉길 의사에 관한 내용, 그리고 한국광복군에 대한 자료들을 보았다. 청산리 전투의 모형 모습은 참담했다. 그러나 그런 전투에서 우리나라가 크게 승리했다니 정말 자랑스러운 일인 것 같다. 두 번째로 윤봉길 의사에 대해 자료가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이 같이 찍으신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에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태극기의 모양이다. 뒤에 있던 태극기는 건, 곤, 감, 이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 당시에는 태극 문양과 건, 곤, 감, 이만 있으면 태극기로 인정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윤봉길 의사께서 쓰신 선서문이 쓰여 있었다. 그 선서문을 읽고 감동이 밀려왔다.

두 번째로 2 전시관, 제목은 '겨레의 시련'이란 전시관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교통과 통신제도, 을사늑약 장면이 전시되어 있었다. 1884년에 우편 제도가 들어왔고, 1896년에 전화가 들어오면서 통신이 편리해졌다. 그리고 1899년에 전차가 들어오면서 교통도 편리해졌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겼고,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완벽하게 지배받으면서 식민지가 되었다. 옛날에는 을사조약이라고 불렀으나, 조약의 정의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을사조약에서 을사늑약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조약에는 제목이 있어야 하는 데 제목이 없다. 또, 고종의 싸인 이나 옥쇄의 낙인이 있어야 하는데, 사인과 옥쇄의 낙인 둘 다 있지 않다. 그래서 을사늑약을 을사늑약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3전시관, 제목은 '나라 지키기'라는 전시관에 갔다. 그곳에는 의병의 자료, 안중근 의사의 자료와 전시품, 등 우리나라를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이 나와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정복당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의병들은 우리나라를 지키고, 외국의 부당한 행동을 막기 위해서 일어났다. 첫 번째로, 일제가 우리나라 황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단발령을 내렸을 때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은 분은 유인석 선생님이시다. 그 외에도 의병들은 수차례 일어났는데, 최익현, 평민 의병장, 신돌석 선생님이시다. 안중근 의사는 1906년, 삼흥학교와 돈의 학교를 설립하셨다. 그리고 1907년, 의병부대를 조직하시고, 또 1909년에는 단지동맹을 결성하시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셨다. 단지 동맹이란 왼손 약지 손가락의 한 마디를 잘라 맺은 동맹이다. 안중근 의사는 약지 손가락의 한 마디를 잘라내고 그 피로 대한 독립이라 쓰셨다 한다.

그리고, 독립군 체험학교에 돌아와서 막사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다른 체험 못지않게 그 체험도 중요한 체험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실제 신흥 무관 학교의 의식주 생활 중에 주(집)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립군들에게 대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했던 체험 중에 이 묵념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독립군들께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나라는 없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만큼은 장난기 없이 체험에 임했다.

이 체험학습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다시 체험하고 전시관을 둘러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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