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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에서 내가 찾은 두가지 의미
작성자 : 백석대 황인준 수상 : 대상 (대학부)
사진을 찾아보니, 사진 하단에 ‘98 7 25이라고 노란색 숫자가 적혀있다. 사진 속에는 세 사람이 서있다. 나랑 내 친척 형과, 나랑 동갑인 그 형의 동생 까지 셋이서 어색한 포즈로 서있다. 친척 형이 가운데에 서 있고, 나는 빨간 옷을 입고 친척 형 옆에 꼭 붙어있다. 또 다른 꼬마는 또 형하고 싸웠는지 조금 떨어져 있다. 즐거운 사진이다. 배경에는 불굴의 한국인 상이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사진을 찍은 날짜가 써있지 않아도, 빛이 다 바래 누가봐도 오래된 사진이라고 생각할 그런, 오래된 사진이다. 사진을 보니 그 당시에 갔던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떠오르려고 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 때의 여행이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독립기념관을 갔던 것만을 아직도 기억한 다는 것은 8살 꼬마에도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을 것이다. 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니 그때 기억이 조금씩, 조금씩 되돌아오는 것 같다. 마치 영화처럼 그때가 보이는 것 같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고, 풀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작게 보이는 겨레의 탑이다. (그땐 겨레의 탑의 이름을 몰랐지만) 멀리 서있는 겨레의 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작게 보이던 겨레의 탑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마침내 겨레의 탑에 도착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서 있다. 겨레의 탑을 뒤로 하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바람은 더 세게 불고, 멀리서 무수한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인다. 태극기에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니,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겨레의 집 앞에, 불굴의 한국인 상 앞에 도착한 내가 보인다. 내가 그 사진을 기억하기로는 그때 가족들과 전국일주 중이였고, 부산과 경주를 거쳐 집으로 올라오면서 독립기념관에 방문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2011년, 13년 만에 다시 독립기념관에 가게 되었다. 이제야 우리 아버지가 나를 독립기념관에 데려오셨던 것은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본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아버지께서 별의미 없이 이곳에 데려왔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백석대학교 학군단에 소속되어 있다. 어렸을 때 독립기념관에 갔던 것이 영향이 있었을지 없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군인이 되기 위해, 학군단을 지원했고, 군인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4월 6일 독립기념관 방문의 두 번째 방문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가족과 같이 갔던 여행을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그때를 다시 한번 더 떠올려본다는 점과, 이제 군인이 되려하는 나에게 독립기념관이란 곳은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주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내가 갔던 곳이 독립기념관이란 곳이란 것을 몰랐다. 나이를 먹고 나서, 그 사진을 보면서도 그곳이 독립기념관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티비를 늦게까지 보고 애국가 나올 때 나오는 곳에 내가 어렸을 때 가봤다. 라는 정도로 기억 속에 묻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에 다시 오게 된 이유는 천안학이라는 교양수업 때문이였다. 서로 바빠진 친구들과 이제 얼굴을 보려면, 억지로 수업을 맞췄어야 됐고, 천안학이라는 수업은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가 말하길 시험도 없고, 야외수업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천안학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살다가 보면 이렇게 사소한 계기가 참 중요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친구 말대로 천안학이라는 수업이 그렇게 어려운 수업은 아니였다. 매주 새로운 강사님께서 오셔서 천안의 여러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셨고, 수업을 듣는 나는 강사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한 장 적어서 제출하면 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이였다. 독립기념관을 가기 전 주 천안학 시간 강의을 마치면서 다음주는 강의실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한다고 했다. 어디를 가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강의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체로 좋았다. 그리고 4월 6일이 되었고, 나와 내 친구 둘, 벌써 삼년째 붙어다니는 나와 제일 친한 친구, “전”과 “신”이랑 독립기념관에 가게 되었다. 신은 천안토박이다. 심지어 목천읍에 산다. 목천읍은 독립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신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왔다고, 또 간다고, 집이 근처니 이따가 그냥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진심 섞인 농담을 했다. 마음이 들떠 떠들던 것도 잠시 버스 안에서 자버렸고, 다 도착해서야 눈이 떠졌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스에서 졸다 늦게 내려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안 뒤쳐지려고 얼른 뛰어갔다.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 들뜬 이유는 오랜만에 신과 전이랑 여유있게 걸어다니며 놀수 있다는 점이였다. 신은 엠티때나, 놀러갈 때 카메라를 가져온다. 사진은 혼자만 보려는지 미니홈피에도 안올리면서, 꼭 가지고 다닌다. 오늘도 가져왔다. 오늘도 가져와 전을 찍는다. 나도 가끔식 찍어준다. 전은 참 좋은 모델로 언제나 웃긴 표정을 잘 짓는다. 2011년이 되면서 나는 진짜로 학군사관 후보생, ROTC가 되었다. 단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단복을 입고 갔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해서 봤던 것은 역시 겨레의 탑이였다. 그때까지도 내가 여기를 왔던가 안왔던가 잘 모르고 있었다. 그 앞에서도 같이 사진 찍었다. 안 그래도 걸음이 느린 두 아가씨와 사진 찍고, 구경하다보니 무리와 꾀 뒤처지게 되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 걸음대로 갔다. 겨레의 탑을 지나 겨레의 큰마당에 도착했다. 멀리에는 겨레의 집이 보인다. 전 주 수업에서 동양최대라고 배웠던게 기억이 났다. 과연 그럴만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좌측을 보니 열차 하나와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와, 총에 맞은 것 같은 또 다른 한 남자, 총에 맞은 남자를 부축하는 남자들의 모형이 있었다. 안중근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이다.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장면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봤던 것이 기억났다. 테러에 관련된 기사였다. 그 기사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충격적인 댓글로 인해, 안중근의사도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테러리스트였다는 그런 내용이다. 역시 그 댓글은 반대가 수 십개가 달렸고, 그 리플을 달았던 사람에게 엄청난 욕이 달렸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평소에 존경하는 위인을 말해보라고 하면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고 대답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무 댓글을 달 수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겨레의 집으로 향했다. 겨레의 집에 도착하고, 불굴의 한국인 상 앞에 도착해서야 그때 깨달았다. 내가 여기를 왔던 게 확실하구나, 여기서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불굴의 한국인 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역시나 또 없어졌다. 전과 신의 요즘 나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는지 항상 앞에서 걷고 있을 때면 몰래 숨는다. 내가 찾아낼 때 까지고 계속 숨어 있는다. 그리고 찾아내면, 뭐가 재미있는지 언제나 바보처럼 웃고 있다. 이 귀여운 바보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개의치 않고 그날은 한참을 동상을 봤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나를 탓하며, 왼쪽에서 보고, 오른쪽에서 보고, 가까이서 봤다가, 뒤로 가서도 봤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다시 둘러보니 그때 못 봤던 것 같은 건물, 조형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새로 생긴 것과, 아직도 그대로인 것을 찾아내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또 옛날에 봤던 영화 중 장동건 주연인 <2009 Lost Memories>가 생각 났다. 그때 마지막 장면에 이 독립기념관이 나왔었다. 너무 감명깊게 봐서 아직도 기억한다. 2009 Lost Memories란 영화의 배경은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고, 일제 강점기가 아직도 이어져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일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아까 보았던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때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선 안중근의사를 방해하여, 역사를 바꿔버린다. 일제의 경찰인 장동건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깨닫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전사한다. 독립기념관이 나왔던 장면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꼬마가 (일제에 의해 희생되었다.) 독립기념관으로 소풍을 오고, 불굴의 한국인 상을 함참을 보다가,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사진에서 웃고 있는 장동건을 발견하면서 끝이 난다. 다시 한번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전과 신이 한참 기다렸을 텐데 안 나와서 얼른 찾으러 갔다. 겨레의 집 뒤편으로 가보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다. 둘은 그 바람개비들을 배경삼아 사진 찍고 있었다. 신은 집이 근처여서 자주 왔다고 했었는데도, 못보던 건물도, 많아지고 시설물도 많아졌다고 했다. 겨레의 집 뒤편에는 전시관이 차례로 1전시관부터 7전시관까지 반원을 그리며 있었다. 1관부터 차례로 들어갔다. 1전시관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 조각이 있어 예상대로 거기에 머리를 넣고 좋다고 사진 한참 찍고 1전시관에 갔다. 전시관은 각기 다른 테마로 어어졌다. 1전시관은 겨레의 뿌리라는 주제였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까지, 그리고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웠는지 실감나게 재현했다. 박물관이란 곳이 어렸을 때는 도대체 왜 가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2전시관은 겨레의 시련이라는 주제이다. 우리 조상들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번 독립기념관 방문하면서 옛날에 많이 했던 생각, ‘그때 그런 생각했었지’ 라고 느낄 계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왜 우리나라의 역사는 고통받고, 힘들기만 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침략을 사전에 막지 못했을까? 왜 한번도 먼저 침략한 적이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때가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 꼬마의 한숨 섞인 푸념이라고 하고 싶다. 그 꼬마가 이제 군인이 되려고 하니, 재미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제 3전시관은 나라 지키기라는 테마다. 무장투쟁을 벌였던, 의병들과 독립군이 주인공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는 위국헌신 할 수 있을까? 군인으로서 나는 우리 조상이 그랬듯이 목숨을 바쳐 싸울 수가 있을까 가족을 뒤로하고, 사실 나와 전쟁은 아주 먼 일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전쟁에 나가서 과연 사람을 쏠 수 있을까, 군인으로서 자질 부족인 것 같다. 용감히 싸우다 돌아가신 선배들을 보며, 이런 마음을 갖은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선배님들께 내가 진짜 군인이 될 수 있도록, 선배들처럼 나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4전시가관의 테마는 겨레의 함성이다. 3.1 운동 당시를 그대로 제현되어 있었다. 1919년 3.1일, 거의 한 세기 전이었다. 남녀노소, 지식인부터, 학생,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까지 할 것 없이 거리에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앞에 칼이 되었든, 총이 되었든지 간에 만세운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운동이 실패로 끝났건, 성공으로 끝났던 간에 이날 이들이 흘린 피는 승리의 불씨가 되었다. 이 승리의 불씨는 중구의 5.4 운동에, 인도,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까지 옮겨 붙었다. 대단한 민족이다. 간혹 우리나라는 항상 침략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를 안 좋아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영국과, 로마가 엄청난 땅을 가졌던 역사가 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켜내는 역사가 있다. 그것보다, 영국과 로마에 비해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반도는 역사로 기록할 수 있을 때부터 침략에 버텨왔다. 고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이 동쪽의 조용한 나라는 강대국에게 맞서 끝까지 지켜냄의 역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한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한반도에서 반만년째 역사를 지켜오고 있는 이 민족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더불어 아까 그 댓글을 달았던 사람에게 댓글을 다시 달고 싶어졌다.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와 같은 거사를 혼자서 해냈다고, 그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안중근의사 한사람이 해내셨다고, 당신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어디가서든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5 전시관, 6 전시관, 7 전시관은 둘러보지 못했다. 주차장으로 모이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버스로 발길을 돌렸다. 5,6,7 전시관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나와 전, 신은 학교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즐거웠던 시간 이였다. 이 날 내가 독립기념관을 갔던 것은 단지 우연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날 독립기념관을 데려간 것도 단지 우연히, 가는 길이였기에 들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문으로 너무 큰 것을 얻고 가는 것 같다. 학군사관후보생으로서, 합격하고 나서 초심을 잃었던 것을 반성한다. 화요일마다 목요일마다 듣는 군사학 수업이 고달팠고, 아침, 저녁으로 매일같이 하는 체력단련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약한 생각을 했던 듯 싶다. 4월 6일 독립기념관을 다녀오면서 나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지켜냄의 역사에 일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해서 배우고 익혀야겠다.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더불어 아버지께서 말씀하고 싶었던 점도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조상들을 생각하고,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말씀을 하셨을 것 같다. 이번 방문으로 한 가지 계획이 생겼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 아이가 8살이 되는 7월 25일에 독립기념관에 꼭 방문하고 싶다. 8살이였던 내가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저분들이 지금의 너를 있게 해주신 분들이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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