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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함성 그리고 독립
작성자 : 천안서여자중 3학년 이은영 수상 : 금상 (중등부)
역시 공부를 안 해서 인지 여유롭게 버스를 타고 간 독립기념관을 다녀 온 다음 날인 오늘,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현장학습이 되었다.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본 직후 현장학습이라 그런지 국사 공부를 한 덕분에 하나하나씩 둘러보는 재미가 훨씬 좋았다. 그래서 재작년에도 갔었고 작년에도 갔었던 독립기념관은 느낌이 매해마다 달랐다. 또한 배웠던 만큼 눈에 들어온다고 이제는 대부분의 문화물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독립기념관을 보러온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유쾌했다. 그래서 꼭 독립기념관을 관람을 한 사람들이 왜곡된 역사를 깨닫고 일본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도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본인들의 행실을 보면 기가 막혔으니 말이다. 독립기념관 입구에 들어서 길을 걸으며 멀리서 보았던 독립기념관은 왠지 웅장해보이기까지 했으며 역사와 관련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봤던 것도 있지만 못봤던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 지붕아래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자 어질어질할 정도로 넓고 컸으며 불굴의 한국인 상이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 지붕을 지나 핵심인 1관부터 7관까지 둘러싸인 만남의 광장을 보게 되었다. 우선 제일 먼저 갔던 곳은 ‘나라세우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보러 갔던 곳은 5관 ‘나라되찾기’였다. 간도에 대한 이주민들에 관련한 자료가 정말 짜증이 나게끔 했다. 그 큰 땅을 빼앗길 만큼 무력한 우리들이라니... 분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4관 ‘겨레의 함성’, 3관 ‘나라지키기’였다. 여기에서는 의병활동의 순서를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광무황제로 불리우는 고종의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자결을 택한 의병들은 ‘그게 옳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왜냐하면 그 수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심청전의 심청이 같은 이치였었던 것 같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들도 그림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특히 의사 안중근 분이 정말로 존경스러웠으며 차마 광복을 보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만약 그때의 상황에 내가 있었다면 ‘내가 과연 그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고 우리의 광복염원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자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쳤다. 그래서 평생 독립만 외치다 심한 고문과 억압에 못 이겨 젊은 청춘의 나이로 죽은 유관순 언니가 대단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빚을 갚으려 국민전체가 함께 모여 국채보상운동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가게 되었던 1관 ‘겨레의 뿌리’에서는 단군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조선 때까지 말 그대로 우리의 반만년 역사의 흐름이 그대로 들어있던 곳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과연 신라의 통일은 바람직한가’에 대한 자료였다. 원래 우리 민족의 거주지였던 발해의 땅을 빼앗긴 대신 삼국의 통일을 이뤄낸 것. 정말 고구려와 발해의 본거지였던 땅을 참 여러 번 빼앗기는 우리다. 제일 속을 끓게 했던 곳은 2관 ‘겨레의 시련’이었다.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일본의 을미사변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을 자꾸 싫어지게 만들었다. 2관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말 인상 깊었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을사조약’이 ‘을사늑약’으로 바뀌어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민족을 뼛속까지 일본인들로 바꾸려 했던 여러 정책은 정말로 어이를 상실하게끔 만드는 정책이었다. 특히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영향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불쾌했다. 여전히 한국말에 일본어와 똑같은 말과 언어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은 ‘위안부’였으며 차마 그 때 그 상황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눈을 뗄 수 없어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남녀평등사상에 민감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렇게나 일본인에게 그런 식으로 천대를 받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도 안 되었던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웃긴 건 일본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었다.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주고는 없었던 일이라니. 위안부에서 피해를 당한 억울한 할머니분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이는 그대로 묻혀 질 뻔한 암흑 속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정말 일본인들의 뻔뻔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차마 보지 못한 조선인들에 대한 고문방식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잠깐 들어갔다가 뼈가 뒤틀리는 소리에 금방 뛰쳐나온 것이었다. 일본이 의학이 발달했다던데 그에 대한 배경인 조선인에 대한 인체실험은 부끄러워해야했다. 또한 일본 아이들이 잘못된 역사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직접 나서서 똑바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독도의 영유권부터 일본인들을 옹호한 그 역사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발전을 위한 일본과의 교역을 옳은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끝없는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부터 알아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이 사실을 기억할까?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조그마한 땅에 살고 암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은 다 현재의 한국이 있기까지의 과정이므로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겠다.’를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자랑스럽고 뿌듯한 역사도 우린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때 잠깐이나마 국사과목을 필수과목이 아니라는 말에 ‘말도 안돼 그건.’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던 적도 있었으며 아직 난 여전히 아쉬운 결정을 내렸던 역사의 순간들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체험학습 후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그건 바로 동물들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실태를 풍자한 책, 신소설인 개화기 때의 소설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이다. 일부를 읽어봤는데 동물들이 나와 토론을 하는 책으로 정말 공감할만하고 멋진 말들이 많이 있었으며 각 동물마다 비유한 속담이나 관용어들이 더욱 더 책을 재밌게 만들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 현장체험학습을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두 가지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7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끝에 알게 되어 들어가 보지도 못햇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독립기념관 뒤의 여러 동산들을 비롯한 공원들을 못 가본 것도 좀 아쉬웠던 부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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