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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 내마음과 내가슴에 남기는 느낌하나
작성자 : 신당고 1학년 조아름 수상 : 금상 (고등부)
학교에서 수련회를 다녀온지 얼마 안돼서 뜻밖의 체험학습(소풍) 소식을 듣게 되었다.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막상 가까이 있지만 갈 기회가 많지 않았고 또한 지금 한국사를 배우고 있어 우리나라 역사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매 마음은 부풀어 있었다. 독립기념관. 이곳은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이 남긴 자취와 자료를 수집․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민족의 얼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하여 1982년 8월 23일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 대회를 개최하고 8월 31일 국민의 성금모금을 시작하여 세워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래서 일까 소풍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설레이는 한편 조심스럽고 마음 깊숙이 진지한 마음이 밀려올라왔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하니 푸른 나무들이 반기는 가을바람이 내 볼을 스쳤다. 마치 내게 손 내밀고 반겨주며 인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기분 좋게 가벼운 마음으로 독립기념관 입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상 내가 독립기념관에 들어갈 때 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겨레의 탑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겨레의 탑은 오늘따라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번 체험학습에서는 아웃도어라는 프로그램으로 독립기념관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곳 독립기념관에서 해야할 과제와 끝마치고 모이는 장소를 알려주시고 보람있는 체험학습이 되도록 지도해주셨다. 아웃도어 프로그램은 독립기념관에 있는 시어록비 또는 동상들을 찾아가 주어진 문제에 답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시어록비부터 하나하나 차례대로 보며 과제를 풀고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가장 맨 처음 우리를 반겨준 강우규 독립의사의 시어록비였다. 나는 예전 중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강우규 독립운동가의 열정 그 뜨거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하여 30세때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사하여 그 후 20년간 환자를 치료하며 학교를 설립해 여럿 청년들을 가르치고 봉사하다 일제에게 우리나라를 강점당하자 광복을 위해 자신의 그 열정 하나로 목숨을 바칠 것을 각오하여 60대에 이르는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919년 9월 2일 새로이 조선총독부의 재임사로 임명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지다 일본군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한 우리나라의 민족열사 중의 한분이었다. 나는 더 많은 독립운동가분들도 계셨지만 이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나는 또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과연 그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하면 궁금한 점도 있었는데 이 비를 보니 강우규 의사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죽음이 눈앞에 오고 있는 데에도 끝까지 자신을 아끼지 않고 죽는 마지막까지도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한 걱정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정말 대단했던 분이셨던 덧을 이 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시어록비들을 하나 둘씩 마음에 새기며 어느새 우린 제5전시관 나라되찾기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독립전쟁의 연출 모형들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 당시에 치열하고 극박했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이곳에서는 강우규 의사가 가입했던 의열단의 기본 신념인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과 독립군의 피묻은 태극기 또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가 인상 깊었는데 그 중 태극기에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것과 민족들의 피가 묻은 것을 보아 나는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유 또 그에 대한 국건한 열망이 그 당시에 얼마나 간절했는지 느낄 수 있었으며 또한 이 나라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식어가는 지금 이 때에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민족들이 과연 이처럼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유 또 그 열망들이 그 때 처럼 다시 간절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상 깊었던 유적들을 뒤로 한 채 제6 새나라 세우기 전시관에 들어갔다. 극박한 배경을 보여주었던 전투 현장 대산 이곳에서는 민족저항의 노래로 가벼운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 이곳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에 세워진 학당들을 묘사해 만든 공간이었다. 어려운 그 상황속에서도 나라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가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가르쳤던 선생님과 또 그 환경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또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교육받던 학생들이 나에겐 큰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이 환경보다 몇 배 아니 수십배 좋은 환경에서도 우리는 불평불만만 털어놓았던 모습이 정말 죄송스러울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었다. 만약 그 당시 내가 저 환경 속에 있었다면 저렇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배웠을지 그 또한 궁금했다. 조금 더 걸어가보니 이번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밀랍 모형들이 있었는데 내가 한눈에 보고 알아볼 수 있었던 분들은 얼마 없었던 것 같았다. 그만큼 내가 아는 것보다 실제로 나라를 위해 싸운 독립의사들이 더 많이 존재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써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이제껏 배운 것 보다 앞으로소도 더 많이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괜히 그동안 한국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자신있어 했던 모습들이 그순간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6전시관을 둘러보니 웬만큼 우리나라의 그 시대환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평소에 그냥 책으로 보고 넘어갔던 유적을들 직접 보니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열심히 관람은 했지만 보면볼수록 우리나라에 대해 알아야할 것, 느껴야할 것에 대한 미련도 남았다.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서 나머지도 다시한번 관람을 하여 독립기념관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소리도 들어봐야겠다. 나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많은 유적과 업적을 보고 정말 이 나라를 찾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우리 조상들의 끈기와 그에 따른 애착이라고 생각하고 피와 땀으로 나라를 힘들게 되찾은 만큼 이 땅에서 우리도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한 자부심과 열의를 가지고 이 나라에 충성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며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 만큼 느낀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학생들이 정말 한국역사에 대해 관심있게 배워 생각만 하는 것 아니라 이곳 독립기념관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나부터 깨닫고 실천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오늘도 나는 작지만 하나씩 지켜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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