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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봄이 온 들을 다시 또 빼앗길 것인가
작성자 : 호서대 박가람 수상 : 금상 (대학부)
수학여행지로 현장학습장으로 지긋지긋하게 끌려 다니던 경주를 다 커서 찾아보았을 때의 예상치 못했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저 뭔가 있어 보이는 데이트 장소로 생각해 낸 경주는 그야말로 내 역사의식의 근본부터 다시 만들었었다. 그렇게 끌려 다녔던 기억밖에 없던 경주가 먼지 속 찾아낸 보석 같아진 후 그나마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학습 장소, 독립기념관이 궁금해 졌다. 기억하는 거라곤 감옥 문틈으로 고문당하는 독립투사들을 들여다봤던 것밖에는 없지만 그 장면이 늘 잊혀지지가 않았었기에 얼마 전 조선왕실의궤반환에 대해 봤던 뉴스도 있고 해서 장난스러운 마음 반, 진지한 마음 반으로 목천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2시간 30분가량이면 도착하는 독립기념관의 첫 느낌은 어렸을 때 기억 그대로 웅장했다. 394만㎡의 넓은 대지에 지어진 7개의 전시관, 입체 영상관, 태극기 한마당, 밝은 누리관 등 주요 시설과 야외전시물들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기념관이라는 딱딱함 보다는 공원같은 자유로웁과 편안함을 주었고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가족 단위나 연인끼리 자전거를 타고 이른 봄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나도 봄볕과 함께 무료입장이라는 단어를 즐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주차장에서부터 보일 정도로 높이를 자랑하던 겨레의 탑 앞에 셨다. 날개 같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모은 양손 같기도하고 하늘을 향해 모은 양손 같기도 하다던 겨레의 탑은 내 눈엔 무엇이 되었던지 꼭대기까지 짓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겠다는 생각에 겨레의 탑이라는 이름이 겨레의 얼을 힘들지만 모아야 한다는 데서 오지 않았을까하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하게 했다. 탑 사이를 당당하게 지나가고 싶었으나 막아놓아 옆쪽으로 돌아 겨레의 집을 향해 올라갔다. 겨레의 집 앞 마당에는 양쪽으로 태극기 한마당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 숫자며 바람에 날리는 소리까지 대단하여 잠시 멈추어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민족의 독립정신과 자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광복 60년 해인 2005년, 광복을 상징하여 815개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고 한다. 한 개만 있어도 숙연해 지는데 815개라…… 3․1운동 때 전 국민이 흔들었던 태극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새삼 감동하여 겨레의 집 계단을 올라서서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겨레의 집은 독립 기념관의 상징 건물로 TV를 통해 대통령의 연설배경으로 몇 번 봤던 기억이 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동양최대의 기와집이라는 크기 때문인지 웅장함에 앞도 당해버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겨레의 집 내부 중앙에 위치한 기념관의 상징적 조형물 불굴의 한국인상은 뒷면에는 백두산 천지를 좌우 벽면으로는 대형 태극기와 무궁화를 이끌고 나아가는 모습이 꺾이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겨레의 집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었다. 전시관은 둘러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벅차올라 돌아갈 때 느껴질 감동이 어느 정도나 될까 기대하며 본격적으로 1관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제1 전시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과 숱한 외세의 침략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들의 역사적인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겨레의 뿌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교 다닐 때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생활자기와 무관들이 사용했던 군장류 등을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거대한 고인돌과 그 속에 누워 있는 해골이 실제를 옮겨 놓은 것처럼 너무 생생했고 간간이 유물들과 함께 만들어 지는 과정까지 설명된 자료들이 이해를 쉽게 했다는 것이다. 1관 전체가 그렇게 길지 않은 동선으로 이루어 졌음에도 선사부터 동북아를 호령하던 대제국 고구려, 철의 나라 가야, 삼국을 통일한 천년 왕국 신라, 해동성국 발해, 국제적인 문화국가 고려를 지나 새로운 질서로 세상을 연 조선까지 단지 유물을 전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요사건을 연계함으로써 그렇게 어렵게 몇 년간 외웠던 역사들을 가볍게 책 한권 읽은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학창시절 국사점수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준은 아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어렸을 때부터 꼭 미리 보여주리라는 다짐으로 ‘겨레의 뿌리’관 관람을 마무리 지었다. 1관이 역사 공부를 시작하고 겨레의 뿌리를 찾는 시간이었다면 2관부터 6관까지는 단지 지식만 쌓는 공부를 넘어 마음속으로 가졌던 역사관을 바로 잡고 다시 되새기며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지식으로 배울 수 없는 것, 글로 나타내기 부족한 것, 말로만은 절대 표현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배우고 보았고 느낄 수 있었다. 먼저 2관은 조선 후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 국가로 발전하려던 한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상과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예전 기억하던 독립기념관이 ‘겨레의 시련’ 관이었던가 보다. 비단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독립기념관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게 독립투사들의 고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초입에는 그저 전차, 전화기 같은 모형 체험을 신기하게만 여기다 을사늑약체결과정과 그 후 외교권 박탈과 함께 시작된 민족의 시련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독립투사의 고문 장면은 잔인함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각종 수탈에 의해 피폐해진 우리 민족들의 생활상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를 느끼게 했다. 과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애국심이 투철해서 느끼는 것일까... 고문장면 앞에 한참 서있던 외국인을 보며 또 그 외국인을 배려하여 뒤에서 한참을 말없이 기다려주던 사람들을 보며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몇 해 전 놀러왔던 초등학교 2학년 조카랑 TV를 보다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보상하는 일본의 태도에 비해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그때 나름 똑똑하고 총명하기로 학교에서 인정받던 조카가 ‘일본군 위안부’가 뭐냐고 물었었다. 평소 이것저것 역사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순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채는 조카 앞에 내가 해준 말이라고는 초등학교 6학년쯤 되는 언니들을 전쟁터로 데려가 괴롭히는 거라는 정도였다. 그 이상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 후로 종종 그 링리 생각나면 더 잔혹하고 비열한 짓이었던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반인륜적 범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더 시간이 가기 전에 해결해야할 시급한 것이다. 매년 세월 앞에 무색하게 저 세상으로 가시는 할머니들이 모두 떠나시고 나면 누가 대신 외쳐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마지막 문구를 가슴에 절로 새기며 나오는 한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또 ‘겨레의 시견’관을 나서며 무거운 마음과 안타까움을 닞지 말자 되뇌였다. 제 3전시관은 대한제국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펼친 애국선열들의 국가 수호 운동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을 비롯해서 안중근, 안창호 의사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투사들의 친필이 담긴 문서까지 볼 수 있어서 그 시절의 절실함을 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2관에서 가졌던 무거운 마음이 그 시절을 살았던 우리 겨레에게는 얼마나 더한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이해도 되건만 과연 나도 지금이 아닌 과거에 살고 있다면 이들과 같았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 씁쓸해지기도 했다. 특히 3관에서는 전과 다르게 현대식으로 변한 시설이 눈에 띄였다. 전시관 중앙에 마련된 민중의 소리전시는 도 다른 감동을 주었다. 1.2.3관을 돌고 지쳐 있을 때 쯤 등장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쯤으로 생각하고 앉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글귀에 따라 한 악수에 뒤이어 들리는 듣기 편한, 가슴을 울리는 민중의 소리들... 그 울림이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나라는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너무 편하게만 살고자 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4관으로 향한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전율을 느끼고 울컥하고 말았다. 4관은 민족 최대의 항일 독립운동인 3․1운동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1919년 3월 1일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3․1운동의 전개 과정과 각계각층의 다양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였던 3․1운동에 대한 설명과 익숙한 얼굴 유관순 열사의 설명을 보며 자신 있게 각 전시물들 앞을 지나쳐 가다 어울리지 않는 모니터를 보았다. ‘함성의 광장’이 열리기 55초전입니다. 광고도 아니고 어이없는 생뚱맞음에 뭔가 한번 기다려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잠깐을 서서 기다린 나는 55초가 아니라 55년 전으로 순간 되돌아 간 기분이었다. 거대한 벽이 열리고 등장한 조각상과 만세 소리. 지금도 그 순간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기념관에서 전시물을 복 소름이 돋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건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꼈다. 하늘을 향해 뻗은 각 손의 강직함과 애절함, 울려 퍼지는 만세소리. 그날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나도 모르게 장난삼아 만세를 불러 보았다. 아마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내가 계획해서 만세를 부른 것이 아니라 절로 터져 나오는 만세. 순간 울컥하는 기분에 숙스럼이 더 켰지만 뭔지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 울림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또 추천하라면 4관을 이야기 하고 싶다. 생각지 않게 3․1운동에 참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함성의 광장을 빠져 나오자 바로 이어지는 제암리 학살의 증언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일제 시대 일본의 잔혹성이야 앞에서도 보았었지만 제암리 학살 사건은 그 모습이 실제로 만방에 두러난 것 같아 분노가 더 했다. 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민중의 한 맺힌 비명이 붉은 창밖으로 들리는 것 같아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탄압을 극복하고 세계를 깨운 3․1운동의 정신은 그 어떤 상황에도 영원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했다. 그 순결한 정신, 그 뜻을 기리며 힘차게 5관을 향해 갔다. 3․1운동에 탄력을 바등ㄴ 우리 민족의 독립활동은 좀 더 체계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해있었다. 확실히 뭔가 힘이 느껴지는 전시관이었다. 제 5전시관은 만주를 중심으로 연해주와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군 관련 자료, 한국 광복군과 의열 투쟁에 관련된 각종 자료와 모형물, 영상 등을 볼 수 있었다. 국외에서 활동했던 무장독립 투쟁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험문제로 출제되었었고 또 내가 특히 어려워했던 부분이라 그런지 이번기회에 확실히 알고 가리라 다짐하며 하나하나늘 유심히 보며 앞으로 나갔다. 간도의 한인 이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많은 독립군단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두고 그 활동범위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역시 김구 선생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의도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김구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고 또 그것을 찾아가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구멍이 나도록 동그라미를 치며 외웠었던 의열단과 한인 애국단. 특히 실제로 윤봉길 의사가 돌아가실 때 묶였었다는 기둥은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 앞에 서서 똑바로 기둥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멀찍이 한번보고 지나쳐야 했다. 아마 너무 쉽게, 편안하게 사는 것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주동포와 독립군 투사들에게 좀 더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 다짐하며 소심한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향해 묵념을 했다. 제 6전시관은 일제 강점기에 전개된 민족문화 수호 운동과 국내 각계각층의 사회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의 중추 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된 전시관이었다. 많은 자료들이 전시된 가운데 5관에 이어 나는 계속해서 긺구 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 때문이겠지만 김국 선생님의 피난 시절 자싱피난가옥과 선박 앞에 섰을 때는 같이 간 동행에게 끝없는 사랑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덕분에 선박위에 앉아 있던 젊은 여인 마네킹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한참을 우리의 이야깃 거리가 되어야 했다. 제 6전시관은 ‘새나라 세우기’라는 이름에 맞게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상황과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몰랐던 부분이 거의 다였던 나로서는 하나하나가 유익하고 신선한 정보들이어서 꼭 9시 뉴스의 정치부분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신식교육이 막 이루어지던 교실에서 아이들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부르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계속 따라 부르며 6관의 마지막 부분쯤에 도착했을 때는 임시정부 요인 밀랍인형들이 일제히 강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정중앙의 김구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분한분 내가 살아서 지켜보노라 하시는 것 같아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그 분위기에 앞도 당했던지 김구 선생님 앞에 ‘안녕하세요. 잘할께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역시 소심한 나는 마음속으로 정신만은 살아계신 그 분들게 묵념을 하고 마지막 7관으로 향했다. 제 7관은 마지막 전시관으로 1관부터 6관까지 관람하며 느꼈던 감동을 넘치지 않게 정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관람객과 함께 하는 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첨단매체를 이용한 다양한 디스플레이 방식과 작동 장치 등을 이용해서 나라사랑정신과 역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특별 기획 전시관에서는 사진을 통해 앞의 전시관과는 다른 편안한 관람을 할 수가 있었다. 전체 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나의 소감은 처음 내 기대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지루한 전시를 탈피해 현대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전시와 함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강인한 독립의 의지와 자주의 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물려주신 선열들의 빛나는 역사를 눈으로 보고 뜨거운 나라사랑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찌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으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뼈아픈 고통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되찾아 새로이 세우기 위한 애국선열들의 순결함을 어찌 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으랴! 관람 내내 나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선열들의 자랑스러움으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지만 다음에는 꼭 자랑스러운 일 한가지쯤은 만들어서 임시정부 요인 밀랍인형 앞에 서리라는 다짐으로 다리는 아프지만 뿌듯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레의 얼과 푸르른 자연이 한곳에, 그곳이 독립기념관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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